Ⅰ. 제암리학살사건
우정면과 장안면에서 만세시위가 점차 지속화․폭력화되자 일제는 보다 강력한 진압을 위해 일본군을 동원했다. 이미 3월 31일 발안장 시위가 있은 직후 경기도 장관과 수원군수에게 군대지원을 요청하였다. 특히, 일제는 가와바다 순사가 참살되는 격한 시위는 천도교가 주동
2005년 10월 31일 연합뉴스에 한국전쟁을 전후해 700∼800여건의 민간인 학살사건이 발생해 20만여 명의 민간인이 학살당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31일 시민단체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범국민위원회'에 따르면 1945∼1953년 동안 남한에서 일어난 민간인 학살에 대해 조사한 결과 모두 700∼800여건
2005년 10월 31일 연합뉴스에 한국전쟁을 전후해 700∼800여건의 민간인 학살사건이 발생해 20만여 명의 민간인이 학살당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31일 시민단체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범국민위원회'에 따르면 1945∼1953년 동안 남한에서 일어난 민간인 학살에 대해 조사한 결과 모두 700∼800여건
제주 4.3연구소의 ‘이제사 말햄수다 1,2’(한울 刊, 1989)가 출간됐다. 이것은 현대사증언 시리즈와 비슷한 맥락에서 친미정권과 반공이데올로기 하에서 발성될 수 없었던 제주도민들의 4.3의 경험을 구술로서 드러내어 역사를 다시 쓰려는 시도였다. 이 증언집엔 민중자서전과 비슷하게 특정 주제의 제
학살의 실제
여기서는 한국전쟁기간에 일어났던 여러 민간인 학살 사건을 직접 분류해보며 사건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그림 4.3해원방사탑. 제주에서는 좋지 않은 일이 생기면 이러한 방사탑을 쌓아 액운을 막는다고 한다.
Ⅰ. 제주 4.3 사건
제주4·3사건은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2) 그 외의 학살 사례들
ㄱ. 경북 예천군 산성리
51년 1월 19일 경북 예천군 보문면 산성리에서 세 차례에 걸친 미군의 무차별 폭격으로 최소 51명의 집단피해가 발생한 사건이다. 당시 미군은 학가산 자락에 위치해 있던 산성리가 인민군의 활동지역이라고 간주하고 폭격을 가했다. 당시 미군은 중공
Ⅱ. 본론
1. 유신독재의 붕괴 - 10. 26 사건
1) 10 ․ 26 사건의 정치적 배경
10 ․ 26 사건은 기본적으로 유신체제의 지배집단과 국민사이의 대립관계에 의해 야기된 정치적 돌발사태였다. 유신체제는 안보라는 미명아래 언론·출판·집회·결사·사상·학문·양심의 자유 등 '자유민주주의'
1. ‘양민학살’이라는 용어 선택에 대한 문제제기
‘양민 학살이 아닌 민간인 학살’
이제까지 우리는 다른 나라에서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민간인 학살이라는 개념보다는 양민 학살이라는 잘못된 개념을 사용해 왔다. 양민 학살을 굳이 사용하는 것은 거창 학살과 같이 학살당한 자들이 한 결 같이
우리는 행복을 찾기 위해 늘 앞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 말은 즉 살아가고 있는 현재가 불행하다고 여기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현재에 내가 불행하기에 행복을 계속해서 갈망하는 것이다. 책이 말하는 것처럼 현재에 내가 행복하길 원한다면 당장이라도 행복할 수 있다. 이제는
2. 조사의 목적 및 방법
1) 의의 및 목적
「캐나다, 싱가폴, 홍콩 등 관광선진국들의 공통적인 특성은 강력한 관광조직의 운영을 통하려 관광환경변화에 잘 대응함으로서 관광산업의 국제적 경쟁력을 유지 발전시켜오고 있다.」(한국관광연구원 2000) 이러한 의미를 비추어볼 때 제주도의 관광산업은